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'현시대에 순수가 처한 상황은 아무런 아픔과 거리낌 없이 잘려 버려지는 손톱과 같지 않을까?' 속마음을 쉽사리 드러낼 수 없는 현대인은 섬처럼 고독하게 살아간다. 이는 경쟁 사회에서 상대/동료를 이기려면 내면을 감추는 것이 더 유리하기에 심정과 인간성을 드러나게 하는 순수한 마음은 긴 손톱 잘라 버리듯 잠재운다. 손톱은 유용한 도구로 쓰이다가 길게 자라면 오히려 불편해져 잘라버린다는 것에서 두눈은 잘려 버려지는 손톱이 현시대에 처해있는 순수함을 상징할 수 있다고 보았다. 직관적으로 떠오른 나름의 의미를 쫓아 손톱을 반추해보니 어릴 적 경험이 떠올랐다. 금속공예가인 아버지를 어릴 적부터 종종 도왔는데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미처 제거하지 못한 쇳가루가 낀 나의 손톱을 발견하고 부끄러워 숨긴 적이 있었다. 왜 부끄러운지를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 시절 위생 검사 때 긴 손톱으로 벌을 받아 생긴 죄의식의 발현이었다. 좀 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취학 전 모래 놀이를 하고 난 후 손톱에 모래가 끼어도 부끄럽지 않았다. 그때의 마음으로 한평생 잘라야 하는 손톱을 보니 불결하기보다는 내가 한 일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증거였던 것이다. 버스 안에서 부끄럽게 여긴 것은 어린 나이에 노동했다는 것이 더 큰 원인이었다. 손톱은 인간이 성장해 속세의 때가 묻고 명을 다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의 이치를 담고 있다. 우리가 진정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‘마음의 때’ 이다. 삶의 부산물이 낀 손톱이 혐오스러운 것은 인간으로서 감추고 싶은 치부(때 낀 존재)를 암시해서가 아닐까? 그러나 진정한 행복을 찾고 싶다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야 하는데 순수한 마음이 이 또한 가능케 한다. 순수함을 잃지 않았던 어린 시절,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소소한 것에도 즐거워했던 그때의 마음이 행복의 근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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두눈_상징적 가치로서의 전환_ FHD 1분39초_2010 전시 영상 화면의 원쪽 삼선 부분을 누르시면 선택해서 보실수 있습니다. 두눈체&시 Gallery <<< 보기 |